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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끈질긴 희생으로 이뤄낸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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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들어서면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별기획을 제작하는 4월 12일에도 당사의 창문 밖으로 하루종일 쏟아붓는 빗줄기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4.19혁명이 발발하고 예순 네번의 해가 바뀌었다. 우리는 그날의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까. 특히 고국을 떠나와 이방인의 삶을 걸어온 재외동포들에게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으로 점철된 이 혁명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운동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졌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을 한인동포(특히 MZ 세대)들을 위해 코리아월드는 특별기획으로 4.19 혁명을 되새겨보려 한다. 64주년을 맞이하는 4.19혁명이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로 새겨져 가는지를 알아보고,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코리아월드 독자들의 저마다의 가슴에 비가 그치고 활짝 개인 날씨의 화창한 햇살을 맞이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편집자 주>



4.19혁명은 어떤 사건이었나?

4.19혁명은 1960년 3.15 정·부통령선거의 부정으로 촉발됐다. 당시에는 부통령이라는 자리가 있었고, 미국은 러닝메이트로 정·부통령이 함께 나오는 반면 당시 한국은 대통령, 부통령을 따로 뽑았다. 

이 선거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극심한 부정선거로 치러지게 되는데, 부정한 방법이 노골적으로 자행되기에 이른다. 정부와 여당의 부정선거 준비는 이미 선거 열흘 전에 구체적인 내용이 폭로되었음에도 그냥 밀어붙인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부정부패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1948년부터 이런 식으로 12년 동안 권력을 유지해 온 이승만 정권의 횡포를 견딜 수 없다!’ 국민들이 부정에 항거해 싸운 사건, 그리고 국민들에 의해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민주정권이 수립된 사건이 바로 4.19혁명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

4.19라는 말 자체가 4월 19일에 모든 것이 이뤄졌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4월 19일 하루에 모든 게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이해하기 쉽다는 말이다. 작게 봐도 3.15 이전부터 저항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선거유세 당시인 2월 28일 대구에서 시위가 벌어진다. 

학생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부 여당에 맞서 대구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이를 ‘2.28민주의거’라고 하는데, 국민들의 저항은 2월 28일부터 시작해 4월 19일에 정점을 이룬다.

선거 당일인 3월 15일에는 ‘3.15마산의거’가 일어난다. 이때 김주열 열사가 실종된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은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박힌 채로 처참하게 떠오른다. 이를 계기로 4월 11일부터 마산에서 다시 시위가 격화되고, 4월 19일에는 서울은 물론이고 부산, 광주 등 대도시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인다.


당시 이승만 정부가 총을 쏘면서 진압을 하는 바람에 4월 19일 하루에만 100명이 넘게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 날을 ‘피의 화요일’이라 부른다. 이 때 혁명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경찰력으로 통제가 되지 않자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한다. 그 결과 시위는 일시적으로 소강상태가 되지만, 4월 25일 대학교수들의 시위 이후 많은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나와 시위를 재개한다. 그리고 4월 26일에는 4월 19일처럼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군은 더 이상 국민들의 시위를 막지 않는다. 미국도 분명하게 이승만과 선을 긋는다. 국민들은 4월 19일보다 더 단호하게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한다. 사면초가 형국이었던 이승만은 결국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하고, 절차를 거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 사건은 4월 19일 하루가 아니라 짧게 봐도 1960년 2월 28일부터 4월 26일까지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단발적,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국민들의 끈질긴 노력과 희생으로 이뤄낸 혁명인 것이다.

즉, 4.19혁명은 3월 15일 부정선거에 저항했던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 집권 12년 동안 있었던 각종 부정부패를 국민들이 더 이상 용인하지 않았던 사건이다. 독재에 맞서 국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하려 했던 사건,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를 회복했던 사건으로 4.19혁명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6.10은 민주‘항쟁’으로 기록돼 있는데, 4.19는 왜 ‘혁명’이란 이름이 붙은 걸까?

이 부분은 매우 논쟁적이다. 학술적인 ‘혁명’의 정의, 즉 ‘체제의 대변혁’이라는 의미를 그대로 적용하면 4.19에 혁명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실제로 4.19 당시 이승만 정부가 붕괴되었으나 극우반공 체제나 경제 체제의 급격한 변동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4.19는 혁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학계에 있다.


하지만 독재정부의 붕괴와 새로운 민주정부의 수립도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대변혁이라고 할 만한 큰 사건이며, 나아가 4.19 이후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체제에 대한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즉 사건 자체의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이후 영향을 보았을 때 4.19는 충분히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5.18이나 6월 항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5.18의 경우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은폐 조작으로 아직도 사건의 진상이 완전하게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희생자(사망자+실종자)는 4.19 때보다도 많다. 하지만 5.18로 당시 권력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말을 쓰기는 어렵다.

6월 항쟁은 수많은 국민들의 지속적인 저항을 통해 6.29선언과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냄으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민주화의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이 붕괴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역시 혁명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타지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4.19혁명은 왜 중요한가?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헌법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물론 그간 여러 번 헌법이 바뀌어 왔고, 그 헌법 개정은 대부분 파행적으로 이루어졌다. 권력자가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무소불위로 휘둘러 헌법을 고치곤 했다.


그렇게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헌법을 누더기처럼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손대지 못했던 조항이 있다. 바로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다. 이 내용은 1948년부터 한 차례도 바뀌지 않고 이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 가장 중요한 이 원리가 위협을 받을 때, 대한민국 국민들은 언제나 저항했다. 그 시작이 바로 1960년 4.19혁명이다. 4.19혁명으로 국민들은 흔들리는 민주공화국을 바로잡았다.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며 바로잡았다.


이런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완벽하지도 않았고,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4.19혁명 당시 우리 국민들은 모든 것을 바쳐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승리의 경험을 맛보았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한 4월 26일을, 우리는 일주일 전 4월 19일 ‘피의 화요일’에 대비하여 ‘승리의 화요일’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4.19혁명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국민들의 끈질긴 노력과 희생으로 이뤄낸 혁명인 경험을 우리 국민들에게 갖게 해 준 역사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헌법 전문에도 기록된 ‘4.19민주이념 계승’

헌법 전문에 4.19가 포함된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4.19가 헌법 전문에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입증해 주는 역사적 증거라 할 수 있다. 즉, 헌법 제1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 4.19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4.19혁명을 비롯해서 현대사에 대해 제대로, 그리고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4.19를 한인 기성세대들이 잘 안다고 말을 하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것 같다. 4.19혁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좀 더 자세히 공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4.19혁명뿐만 아니라, 우리와 직결된 현대사를 잘 이해해야 우리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고 미래의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고국의 민주주가 향상되고 발전되기를 염원하는 많은 재외동포들에게 이러한 관심의 끈은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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