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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가을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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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면 철사에 몇 마리씩 코를 꿰어 어물전에 길게 늘어놓은 낙지 꾸러미를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20마리씩 꿴 것을 한 코라 하여 팔았다. 이렇게 꾸러미를 사 오면 살짝 데쳐서 먹는 것이 어머니의 일반적인 낙지 요리로서 삶은 듯 안 삶은 듯, 터질 것 같은 탱탱함이 입에서 탁 터지는 식감과 쫄깃쫄깃한 맛을 느끼게 하는 어머니의 낙지 데침은 절묘하고 기가 막힌다. 불그스레한 색깔도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문어와 비교될 만큼 고급 음식에 속하며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특히 칼로리가 낮고 지방함량이 적어 다이어트에 좋고, 타우린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효과가 있다. 낙지 데침은 간장이나 참기름에 찍어 먹어야 낙지의 고소한 맛을 더한다. 삶는 시간에 따라 맛을 달리하는 시간의 미각이 돋보이는 어머니의 솜씨가 새삼 그리워진다...


낙지요리 중 최고의 인기는 역시 낙지볶음! 무교동·청진동의 낙지 골목은 70년대 이후 50여년 동안 최고의 성지가 되었고, 통금이 있던 시절에도 늦게까지 불을 밝혔던 동네다. 

우리나라 낙지는 여기에 다 모이는 것 같았다. 지금은 피맛골도 없어지고 재개발사업으로 몇몇 가게만 있어 무교동 낙지골목의 명맥(서린, 유정낙지 등)을 유지하며 옛 추억이 있는 식도락들이 즐겨 찾고 있다. 


그 시절 볶음은 무척 매운 것으로 찬 콩나물국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은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어떤 집의 낙지는 몇 가닥 없고 콩나물과 양념이 더 많아 서로 눈치껏 낙지를 찾아 접시를 헤집던 곳으로 자릿값 하는 상술이 아쉬웠던 시절이었다. 

딸 주연이는 낙지볶음을 무척 좋아한다. 보통 낙지볶음은 콩나물 등 야채를 넣어 함께 볶는 요리인데, 야채 없이 낙지만으로 고추장 소스(?)를 사용한 볶음요리를 좋아한다. 

하얀 밥과 함께 썩썩 비벼 먹으면서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참 맛있게도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에 따로 삶은 콩나물을 나중에 곁들이면 깔끔하고 아삭한 식감이 더하여져 좋다.


우리나라 낙지의 주 생산지는 갯벌이 발달한 서해안으로 태안, 무안 지역이 유명하다. 그중에 목포 인근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세발낙지는 미식가들의 혼을 빼앗을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낙지로 일명 ‘목포세발낙지’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글자 그대로 세발낙지의 발이 세 개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데 세발의 ‘세’는 ‘가늘다’라는 뜻의 한자어이다. 쫄깃한 식감이 뛰어난 어린 세발낙지는 크기가 작고 부드럽기 때문에 산지에서는 나무젓가락에 둘둘 말아 참기름장에 찍어 한입에 먹는 별미로, 입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잘 씹어야 하며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함과 바다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입천장에 쩍쩍 붙는 맛에 촉각을 세우며 먹는다. 


생소한 사람에게는 조금 편하게 먹는 방법이 생마늘을 같이 먹으면 요동(?) 치는 느낌을 적게 느낄 수 있다. 원기 회복에는 낙지 중에 세발낙지를 최고로 친다. ‘죽어가는 소도 살린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이야기로 ‘갯벌 속의 인삼’이라고 말하듯 보양음식으로 인기가 높으며 예로부터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고 하였다.


나의 뻘낙지 사랑은 20년 전쯤 목포에서 압해, 무안으로 이어지는 국도 77호선(전남구간) 도로 확장 설계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도로 설계는 철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좋은 작품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수차례 현지조사를 하면서 지역 명물인 세발낙지를 경험(?)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먹는 낙지와는 다른 느낌을 음미하러 낙지의 성지 목포로 식도락 여행을 떠나보자.


무안 해제면에 있는 낙지 집하장에는 할머니들이 갓 잡아온 갯벌낙지를 수조에 보관하여 전국 각지로 공급하는 곳이다. 여기서 살아있는 세발낙지를 통째로 먹은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짭조름한 바다의 맛은 양념이 필요 없으며, 어찌나 싱싱하고 연한지 톡톡 끊어지는 식감이 황홀하다. 

한 마리 가격 치고는 약간 비싼 듯한 표정(?)을 지으니 주인장의 진한 사투리로 ‘할머니들이 갯벌에서 잡는 모습을 보면 비싸다는 말이 나올 수 없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산지에서 느낄 수 있는 호사스러운 맛이다.


무안의 ‘제일회식당’에는 독특한 요리가 있다. 일명 ‘기절 낙지’이다. 긴 접시에 다리만 가지런히 길게 놓여 있고 그 위에 깨를 뿌려 나오는 데 전혀 움직임이 없어 죽은 낙지처럼 보인다. 

양념소스에 다리 하나를 넣으니 그때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반전이 벌어진다. 잠시 기절해 있었던 살아있는 낙지다. 주인장만의 독특한 비법으로 특허라도 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며, 주인의 자부심과 애착이 눈에 보인다. 

낙지비빔밥도 빨간 양념이 아닌 간장 양념을 베이스로 하여 감칠맛이 좋고 부추가 많이 들어 있어 담백하고 슴슴한 맛이 느껴진다. 또 가고 싶은 식당이다.


또 다른 맛의 비빔밥집이 목포역 근처 ‘독천식당’이 있다. 독천은 원래 영산강을 따라 독천리까지 배가 들어와 독천낙지가 유명하였으나 이제는 뱃길이 없어지고 지역 명소로 남아있다. 

이 집은 독천이 아닌 시내에 있는 오래된 식당으로 목포의 명문 낙지요리 명가로, 예전에는 허름한 이층집이었으나 확장도 하고 주차장도 조성되어 있다. 잘 삶아진 콩나물의 아삭아삭한 식감이 탱탱한 낙지와 잘 어울리는 짜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명품 낙지비빔밥으로 미나리가 들어있어 향도 좋다. 목표 역 근처에 있어 도착 혹은 출발시간에 맞추어 꼭 들르는 곳으로 갈비가 들어있는 갈낙탕도 유명하다.


이런 목포의 느낌과 맛을 주는 식당이 서울 삼성동에 무안 낙지를 고집하는 ‘매일낙지’가 있다. 품질과 밑반찬이 나무랄 데가 없으며 계절에 따라 어린세발낙지도 있어 식도락에게 인기 있는 식당으로 나의 20년 단골집이다.

특히 딸 주연이가 좋아하는 고추장낙지 볶음이 있는 식당으로 매콤 달콤한 고추장 소스가 매력적이며 따로 삶아주는 콩나물과 함께 비벼 먹으면 음~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여기에 김가루와 참기름은 그 맛을 더해준다.


넉넉한 국물 소스에 파를 듬뿍 넣어주는 ‘간장낙지’는 손님상에서 직접 잘라주는 야들야들하고 쫄깃한 낙지와 따뜻한 간장소스의 감칠맛과 알싸한 맛이 조화를 이루며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편안한 요리이다. 

낙지를 거의 먹을 즈음 가느다란 소면 사리를 넣어 간장소스와 함께 후루룩 먹으니 파 향기와 더불어 상큼한 맛이 입안을 휘돈다. 밑반찬으로 뚝배기의 따끈따끈한 무청시래기에 젓가락이 자꾸 가며, 계란만 들어있는 계란찜도 몽실몽실한 게 입안에서 스르르 없어지는 부드러움이 일품이다. 특히 낙지 삶는 기술이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의 손맛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가을에 접어드는 길목에 쓰러진 소도 벌떡 일으킨다는 세발낙지를, 미국에서 온 친구 부부와 함께 무안갯벌낙지를 즐기려 삼성동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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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학사, 석사) 전공.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 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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